2012대선준비

'엄친아'가 된 대한민국

goldking57 2009. 3. 17. 11:24

'엄친아'가 된 대한민국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khka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엄친아와 엄친딸! 공부 잘하고, 외모 준수하고, 성격까지 좋아 나무랄 데가 없는 엄마 친구의 아들과 딸….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 덕에 한국이 '엄친아·엄친딸'이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아이들은 매년 한국 아이들보다 학교에서 한 달 정도를 덜 보낸다. 그렇게 해서는 21세기 경쟁에 대비할 수 없다"는 말로 미국의 교육개혁을 촉구했다. 미국 자동차업계를 향해서는 "미국의 신형 하이브리드카를 움직이는 배터리는 한국산"이라고 자극했다.

한국이 선진국에서 엄친아가 된 사례는 더 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대통령 직속 '성장 촉진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지난해 초 프랑스를 개혁하고 성장시킬 아이디어를 담은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는 한국의 송도 신도시를 모델로, 프랑스 전역에 인구 5만명 규모의 신도시 '에코 폴리스'를 10개 만들자는 내용도 있었다. 오는 2016년까지 프랑스 전 국민에게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고도성장에, IT 선진국으로 급변을 거듭해온 한국을 주목한 결과다.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에서도 모범 사례로 등장하니 뿌듯한 기분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선진국을 보면서 수없이 만들어냈던 '엄친딸 신화'를 벗어날 시점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미국·일본·유럽 같은 선진국을 보면서 끊임없이 자극받고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경제만 흔든 게 아니고, 선진국 신화도 함께 흔들고 있다. 엄친아·엄친딸은 정말로 엄마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완벽 그 자체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교육에 대한 찬사를 들으며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뭐든 다 아는 건 아니네. 한국 아이들이 한 달 더 책상에 앉아있으면 뭐 하나. 달달 외는 주입식 입시 공부에 창의력도, 청춘도 멍들어가는 걸!" 하고 회의적 반응을 보인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프랑스의 사례가 된 신도시만 해도 그렇다. "국제도시·행정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 등등 온갖 이름을 붙여 중복·과잉 투자를 하는 통에 혈세만 낭비한다"고 비판이 쏟아지던 정책 아닌가.

애당초 '엄친아·엄친딸 신화'라는 게 '비교 대상을 자극제로 등장시켜 내 아들 딸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엄마의 욕심이 담겨 장점을 부각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을 향해 달려갈 때는 한 사회에 적절한 자극과 해법을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하지만 아들 딸이 철들면서, 한 사회가 일정 발전 단계에 이르면서 그 효과는 전만 못하다.

비슷한 고민을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 일본 도쿄대 총장이 저서 '용기를 갖고 선두에 서라'에서 피력했다. 고미야마 총장은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라는 목표가 자동 설정되는 따라잡기의 사회'요, '선진국은 스스로 목표를 정하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일본은 아직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파랑새를 외국이나 과거에서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선두에 서는 용기,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는 도전의식을 통해 '따라잡기 시대'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선진국 시대'로 돌입한다는 고미야마 총장의 주장은 우리도 새겨들을 만한 관점이다.

선진국들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손 내밀면서 위기 극복의 공조를 청하는 글로벌 금융위기야말로 한국이 '선진국 시대'로 돌입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엄친아'로 바라봤던 강박관념을 벗어던지고, 우리 스스로 문제를 풀겠다는 선진국 의식을 가질 호(好)조건이 무르익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