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대선준비

"야당이 고맙다"

goldking57 2008. 11. 3. 15:10

[김대중 칼럼] "야당이 고맙다"
결속력도 리더십도 없는 야당 인기 바닥 기는 여당 들러리만
사사건건 발목만 잡는 舊態로는 국민에게 대안세력 어필 못해
김대중·고문

▲ 김대중
요즘 보수-우파 측 인사들은 정치 얘기만 나오면 "민주당이 고맙다" "야당 덕에 산다"고들 한다. 이명박 정권이 금융위기, 쇠고기 파동 등 여러 악재에 시달리며 인기도가 바닥을 기고 있지만 야당들도 여당 못지않게 죽을 쑤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다.

정치에서 여당의 악재는 야당의 호재일 수 있다. 아니, 야당이 호재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은 구태의연한 투쟁방식에 매몰된 나머지, 호재로 만들기는커녕 여당 악재의 들러리를 서고 있는 꼴이다. 난형난제란 생각이 들 정도다.

국회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온통 야당의 물고 늘어지기뿐이다. 인사문제에서 온갖 정책 쟁점에 이르기까지 '안 된다' '강력 거부' 등 반대 일색이다. 소수당이 된 이상 정부-여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라도 대안을 내고 표결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의회정치의 기본이라는 구태의연한(?) 소리를 굳이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작금의 국회가 너무나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데는 야당의 발목잡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잘못돼도 집권 측의 책임이다. 또 자기들이 여당일 때는 어찌했는가 역지사지해보는 아량도 있어야 한다. 여전히 과거 군부 집권 시절의 투쟁방식에 연연하는 것은 이제 국민의식이나 시대정신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도중에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는 민노당의 행태는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의사당 내에서 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앉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리 정책에 반대해도 적법하게 선출된 대통령의 시정연설, 그것도 1년에 한 번 있는 대국회 연설을 거부하고 퇴장하다니 국회의원은커녕 국민으로서의 자격도 없다.

그런 처지에 자기들 끼리끼리의 동료 보호의식에는 투철하다. 김민석·문국현·강기갑씨 등 야권지도부 인사들이 검찰 소환에 불응하면서 '야당탄압' 운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수사당국이 야밤에 영장 없이 끌어가는 것도 아니고 조목조목 의혹 내용을 온천하에 밝히고 불러다가 조사하겠다는데 그것을 '탄압'이라며 야당들이 '품앗이 공조'하는 것 그 자체가 법을 무시하는 태도다. 우리는 그들이 구린 데가 있어 국회라는 보호막 뒤에 숨는 것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치사하다는 생각뿐이다.

게다가 각종 시민데모에 참가함으로써 국정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격하시키는 야당의 자기비하는 과거 독재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집권 측을 비판하고 견제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야당이 의사당을 버리고 장외(場外)로 나가 일부 시민세력의 보조역할에 머무는 것은 우리 헌정체제에의 반역이나 다름없다.

보수-우파세력이 무엇보다 안도하는 것은 오늘날 야당에 야권을 이끌고 갈 강력한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집권세력의 실정을 차기 정권교체의 모멘텀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지도자가 지금 야당에 없다는 것이 우파세력에는 불행 중 다행(?)이라는 것이다. 지금 야권이 국회에서 지리멸렬한 투쟁방식에 올인하고 있는 것도 과거 YS·DJ와 같은 리더십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이 지금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물고 늘어지는 방식으로는 국민에게 대안 세력으로 어필할 수 없다. 단합된 결속력도 없고 강력한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MB정부가 지금의 혼란상태에서 탈피하느냐 못하느냐와 상관없이 4년 후 정권탈환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MB세력 내에서는 우파정권의 계속 집권을 포석하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은 근자에 측근 인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애당초 자신의 좌파에 대한 인식이 미온적이었음을 시인하고 친북좌파 척결에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우파의 연속적인 집권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있었다고 한다. 하긴 4년 후 좌파가 다시 집권하면 'MB의 시대'는 역사에 비집고 들어설 자리도 박탈당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5년 내외에 북한 내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발생할 개연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쪽에 어떤 성격의 정권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좌파가 한반도의 주류세력으로 등장하려면 여적(與的)인 것이면 덮어놓고 거부하는 지금 같은 소아(小兒) 정치로는 어림도 없다. 우파세력이 그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주인의식을 행사하려면 야권보다 넓은 포용력과 높은 안목을 가져야 한다. 야당이 무기력한 것에 안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입력 : 2008.11.02 22:05 / 수정 : 2008.11.02 2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