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5.01 19:22 / 수정 : 2007.05.02 07:57
- 양상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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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前) 서울대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역설적으로 한나라당에 위기다. 정 전 총장은 사실상 여권의 유일한 대안이나 마찬가지였다. 충청권 출신으로 ‘호남+충청’의 지역 구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 전 총장이 무대에서 사라짐으로써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정 전 총장이 물러난 엊그제가 이번 대선의 분수령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에 위기일까. 이명박, 박근혜 두 진영이 끝까지 같이 갈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두 진영에 대선 고지(高地)는 눈앞에 왔다. 수류탄을 던지고 돌격만 하면 대망의 고지는 우리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물러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됐다.
고지 방어군의 지휘체계는 와해된 상태다. 정 전 총장의 퇴장으로 가장 득을 볼 사람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이제 정 전 의장밖에 없지 않으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과거 분당(分黨)의 핵심인 정 전 의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주당 박상천 새 대표는 이 문제에서 원칙이 확고한 사람이다. 정 전 의장은 민주당이라는 날개를 달지 못하면 득표력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대신 민주당에선 조순형 전 대표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다. 민주당과 합칠 가능성이 있는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에겐 아무런 대안이 없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한나라당 탈당 전력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당분간 혼자서 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박 양 진영은 이제 정말 적수는 상대방밖에 남지 않았다고 볼 것이다. 싸움이 사생결단으로 가게도 됐다. 이 전 서울시장은 지지율이 1등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고,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의 지지율에 허수(虛數)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약 4분의 1이 호남 유권자들로 구성돼 있다. 여론조사 질문을 ‘누가 대통령 되는 것이 좋으냐’에서 ‘지금 투표한다면 누굴 찍겠느냐’로 바꿨더니 이 4분의 1이 상당히 줄어드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났다. 박 전 대표 진영은 8월 한나라당 경선 전(前)에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여권 대통령 후보들이 결정되면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떨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실제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한나라당 경선은 깨지지 않을 수 있다. 양쪽 다 경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경선이 이뤄지면 한나라당 후보는 단일화된다. 문제는 8월 전에 여당 후보들이 결정되지 않을 경우다. 지금으로선 그 가능성이 더 크다. 이 경우에도 한나라당 경선이 예정대로 치러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확언할 수 없는 것이 한나라당의 위기이고, 결국 두 사람 모두의 위기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것은 정치에서 가장 잘 적용되는 말이다. 정치는 합치고 모으는 일이다. 국민은 그것을 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 안도감을 느끼고 그를 따른다. 이게 정치력이다.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정치를 못하면 경제도 못 살리고, 안보도 튼튼히 할 수 없다. 이·박 두 사람에 대해 끝까지 불안해하는 물음표가 따라다니는 것은 결국 정치력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 의문을 해소하기 전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정치력은 손해보고 희생하는 데서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여당 후보의 기득권을 버리고 앞길을 알 수 없는 모험을 해서 후보를 단일화하는 정치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박 두 사람도 손 전 지사 탈당 때나 지난 재·보선 때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두 사람 다 그 기회를 걷어찼다.
한나라당이 분열의 기로에 선 지금이야말로 두 사람이 국민에게 정치적 역량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국민 입장에서도 두 사람에게 대통령 자질이 있는지 알아볼 기회다. 아니라고 확인되면 국민은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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