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꿈꾼다는 한명숙 총리의 우아한 고궁 산책
어제(15일) 동아일보 정치면에서 아주 희한한 기사를 봤다.
“韓총리 행보 정치적 냄새”라는 제목 아래 어른 손바닥 세 개 크기 정도의 제법 큰 박스 기사였다.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한명숙총리의 최근 움직임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서두로 시작한 기사를 보다가 흠칫 눈을 의심하는 부분이 몇 군데 눈에 띠었다.
최소한의 상식이 있는 일반인이라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기사 속에 춤추고 있었다.
그 기사를 보다가 문득 60년대 저항시인 김수영이 떠올랐다. 김수영에 대한 시단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개인적 견해로는 그 시인은 당시로는 ‘혁명적 기법’을 시에 도입해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가 어떤 산문에서 자신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아주 사소한 부분의 부조리함에 대해 참지를 못하고 화를 낸 다음 이내 그런 자신에게 환멸을 느낀다고 쓴 내용을 보면서 공감을 느낀 적이 있다.
나도 김수영처럼 ‘사소한 부조리함’을 참아내지 못하는 쪼잔한 성격의 내 자신이 맘에 안 들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부조리한 사소함이 쌓여서 결국 우리 사회가 그야말로 ‘개판’이 되는 걸 도저히 참아내기 어려운 것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명숙씨는 요즘 핵심 측근들을 중심으로 대통령선거 레이스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한 총리의 최측근 인사는 “총리실 정무팀을 중심으로 한 총리의 대선 후보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며 “우선 여당의 유력 후보군으로 부상한다는 복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인기가 없는 점이 고민이긴 하지만 (한 총리로서는) 일단 여권 내에서 기반을 마련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된 후 청와대의 지지를 더하면 대선 후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워져 서울의 재래시장이나 지방상인들 사이에선 거의 ‘민란 발생’ 직전일 정도로 여론이 흉흉하다고 하는데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사람이 한가하게 ‘총리실 정무팀을 중심으로 대선후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굳이 따지고 싶지도 않다.
동아일보 기사는 계속 이렇게 쓰고 있다. “최근 한 총리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일요일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하고 있다”며 “표면적으로는 국정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듣는 자리지만 당 복귀 후의 진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대목에서부터는 도저히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기사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한 총리가 최근 일요일은 물론 평일 새벽에도 종로구 창덕궁 내 후원(비원)을 자주 찾고 있다”며 “주로 혼자 산책을 하며 자신의 거취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여러분께서는 이 대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무리 국무총리라는 직책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막강 고위공직이라고는 하지만 ‘비원’이 어디라고, 일요일이고 평일이고 개장시간도 아닌데도 그렇게 자기 집 뒤뜰 거닐 듯 혼자 산책하면서 ‘거취문제를 고민하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원’하니까 여러 가지 추억들이 떠오른다.
유치원 시절 부모님과 함께 처음 방문한 고궁이 바로 비원이다.
그림을 잘 그리시던 부친은 이젤을 세워놓고 비원 안의 기품 있는 정자들을 그리곤 하셨다. 오솔길 같은 곳을 걷다 보면 다람쥐들이 또르르 지나가곤해 겁 많은 꼬마였던 나는 부모의 옷자락 뒤로 숨곤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후 여학교 시절엔 친구들과 놀러 다녔고, 아마도 대학시절까지는 비원을 자유로 출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십 수 년 동안 비원은 ‘출입금지’구역이 되었을 것이다.
요새도 표 끊었다고 마구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창덕궁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맨 먼저 ‘창덕궁에서는 언어권별로 정해진 입장시간에 입장하여 안내원과 함께 관람하셔야 합니다. 개별 관람은 허용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나온다.
그런 비원에 ‘대통령후보에 나갈까 말까’의 행복한 고민을 하고 계신다는 한총리가 ‘평일이고 일요일이고 새벽에 혼자 산책을 하고 있다’는 기사는 그야말로 평범한 소시민일 뿐인 나의 부아를 돋우고 말았다.
십인십색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은 친구중의 하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펄펄 뛴다. 가관이라면서. 말이 안 된다고! 당장 블로그에 올려라! 라고 귀청이 떨어질 듯 큰 소리로 난리다.
아주 온유한 한 친구조차 ‘한 총리의 새벽 비원 산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나의 질문에 한심하다는 듯 코웃음쳤다. 웃긴다는 거다. 대통령이 웬말이냐고 악을 써대는 친구도 있었다. ‘누가 하니까 저도 할 수 있다 이거지?’라는 말도 했다.
대체로 요즘 시중에선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품평회가 열리는 자리라면 어김없이 이런 얘기가 돈다고 한다. ‘누구도 하는데 언 놈은 못하겠냐’라는 시니컬한 얘기다. 그래서 ‘누구나 입후보야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자리가 바로 대통령자리’라는 아주 그럴싸한 명언도 나돌아 다닌지 오래다.
아무튼 상황이 이런 만큼 한 총리라고 ‘청운의 꿈’을 갖지 말라는 법조항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역대 어느 총리가 ‘차기’를 고민하면서 ‘관람시간’도 아닌 새벽에 호젓이 고궁을, 그것도 비원을! 산책한다는 얘긴 이제껏 듣도 보도 못했다.
창덕궁 관리소에 전화를 했다. 혹시 국무총리는 ‘마음대로’ 산책해도 된다는 게 법으로 보장되어있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법 이전에 상식’ 아닌가!
전화 받는 직원은 관람시간과 관람규정을 묻는 내게 상당히 친절히 답했다.
그 직원 말로는 오전 9시 15분에 개장하며 개별적으로는 돌아다닐 수 없다고 했다. 안내인의 안내를 받으며 ‘단체로’ 1시간 20분 정도 경내를 관람할 수 있다고 했다. 개장 시간 이전에 좀 들어갈 수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안 된다는 답이 날아왔다. 뭐 물어보나 마나한 우문 아니겠는가!
공직자가 새벽에 산책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쪽에서 꼬치꼬치 캐물으니까 뭔가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던지 자기보다 더 잘 아는 담당팀장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이쪽에선 ‘총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는데도 전화 선 저 쪽에서 자기네들끼리 ‘총리님 얘긴가 봐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바꾼 여성 팀장은 무언가 총리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했는지 VIP들은 무료입장이 가능하구요, 매일 오신 것도 아니구요, 하면서 계속 ‘변명’하는 듯한 답변이었다. ‘그렇게 변호하시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더니 전화선 저 쪽에서 찔끔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어쨌든 ‘개장 시간 이전’에 개인이 비원에서 산책이 가능하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더니 마지못해 ‘불가능합니다’라고 했다.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국무총리 한명숙씨가 동아일보 기자가 쓴대로 ‘자신의 거취문제를 고민하면서 비원을 새벽에 산책하는 것’은 우리 같은 소시민의 눈에는 아니올시다로 비쳐진다.
꽤 오래 전 한 영부인께서 국립 박물관의 휴관일에 박물관 관람을 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아주 조그맣게 난 적이 있다. 그때도 ‘사소한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나는(더구나 지금보다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 청와대로 전화를 직접 걸어 따진 적이 있다. 세금 꼬박꼬박 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공무원들에 대한 ‘견제와 관리 감독’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게 내 개인 생각이다.
예전 조선시대였다면 ‘관존민비’사상아래 ‘상것’들이 어디 감히 윗분들에게 들이대냐며 치도곤을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민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할 ‘잔소리’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요즘처럼 ‘민감한 정치의 계절’에 민생을 위해 일하는 것만 해도 ‘격무’일 국무총리가 ‘차기’를 바라보냐 마느냐로 고민하느라 ‘개장시간 이전’의 비원을 산책한다는 건 우리네 상식으론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입장료를 내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라 ‘법’에 규정된 ‘개장시간’을 어겨가면서 출입하겠다는 그 발상!은 ‘특권의식’의 발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무총리 한명숙씨는 언젠가 우리 블로그에서도 말했지만 대한민국에서 ‘후분(後分)’이 좋기로 첫째둘째 가는 여성이다.
다 알려졌다시피 한 총리는 ‘간첩죄로 13년여’를 복역한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한 ‘착한 아내’였다.
그녀가 소위 ‘정규직’으로 취직한 건 그녀 나이 무려 57세 때인 지난 2000년 DJ의 부름을 받고 ‘전국구 의원’뱃지를 달면서부터였다. 그 이전까지야 그냥 시민단체에서 봉사하는 ‘얌전한 아주머니’였다. 물론 정규적인 고액월급이야 받은 적이 없다.
사오정이니 뭐니 해서 남들은 ‘뒷방신세’가 될 뒤늦은 나이에 그녀는 당당히 전국구 국회의원에 임명되었고, 그 이후의 그녀의 ‘놀라운 관운’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선 최고로 뽑힐 만하다.
2006년,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국무총리로 취임했으니 ‘정계입문 6년’만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건 아마도 그녀의 ‘사주팔자’에 관운이 뻗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장안의 사주쟁이들은 그녀의 ‘대운’에 무한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문마저 들려온다.
작년 4월인가 그녀가 국무총리내정자로 청문회에 참석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녀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걱정일 정도’로 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지만 자신을 총리로 임명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대단히 바람직한 임명”이라는 우문현답을 할 정도로 ‘귀여운’ 구석도 있는 여인이었다.
어쨌든 대한민국 여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의 ‘벼락출세’는 ‘역할모델’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5·31 지자체선거 때 재수 좋게 구청장이 된 한 여성은 자신이 ‘국무총리급 구청장’이라는 괴상한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을 정도였다. 한나라당의 한 여성의원도 자신이 지지하는 모 후보가 대권을 차지하면 자신은 총리‘정도’를 맡게 될 것이라는 ‘농담’을 사석에서 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세월이 좋아져 여성들이 각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건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녀가 ‘균형발전’을 이뤄야 대한민국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이 ‘정치권’에서만큼은 이상하게 제 실력보다는 ‘웃분’에 잘 보여 출세한 여성이 적지 않은 게 문제라고 본다.
어제 동아일보는 박스기사로 ‘정치적 냄새가 나는 한 총리’를 닦아세우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같은 날 사설에서는 ‘규제완화 이중 잣대와 한 총리의 정치색 행보’라는 제목아래 준열히 그녀를 나무랐다.
사설의 지적에 따르면 그녀가 ‘정부 안에 헌법 개정추진지원단’ 구성을 자청해 개헌 나팔수로 나서는가하면 국회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각을 세우며 대통령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사설은 또 그녀가 취임 한 달도 안 돼 반미 시위대가 군인들을 폭행한 사태에 대해 “모두 한 발씩 물러나 냉정을 되찾자고 말했다”는 것을 지적하며 ‘불법시위대와 공권력을 동렬에 놓다니 정부의 존재이유를 알고나 있는 지 의심스러운 발언’이라고 성토했다.
‘관운 좋은’ 한명숙 총리지만 어제만큼은 ‘일진’이 아주 재수 없는 날이었던 것 같다. 한 정치인을 정치면도 모자라 같은 날 사설에까지 꾸짖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동아일보가 자신을 그렇게 ‘매도하는 것’에 대해 하소연할 최소한의 자구책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
역대 어떤 남자 총리도 그렇게 현직에 있으면서 ‘차기 대선 도전’을 할까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과문한 탓인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언론의 질타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대권도전이야 그녀 개인의 자유이다. 그 누구도 말리고 자시고 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가뜩이나 욕 많이 먹고 있는 대통령을 감싸면서 되도 않는 논리로 ‘헌법개정추진지원단’이라는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기구까지 세우려고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녀는 역대 어느 총리보다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년 4월 무사히 총리에 취임했던 그녀는 취임 한달 남짓도 안 돼 남편을 대동하고 ‘유럽 순방’을 떠나는 등 ‘화려한 총리’로서 맹활약을 해왔다.
그 때 우리 블로그에선 왜 남편이 그녀를 따라가느냐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도 그녀와 그 남편은 국무총리내외로서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여러 가지 희한한 발언으로 세간에 회자된 적이 종종 있어왔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관직생활은 고작 7년차인 ‘일천한 공직경력’의 그녀로선 어쩌면 이러저런 시행착오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장시간 이전의 비원 문을 일부러 열어가면서까지 ‘혼자’ 새벽산책을 즐기는 배포와 행태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 같다.
조선조 왕과 중전마마들이 산책하던 그 우아한 분위기의 왕궁 정원에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개장시간 전 산책을 즐기며 과연 그녀는 무슨 고민을 했을까?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내의 정원만 해도 산책하기엔 꽤 쾌적한 공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명숙 총리님! 그냥 삼청동 공관 내 넓은 정원에서 산책하세요.
민폐 끼치지 마시구요.-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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