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두식 논설위원
대통령은 한나라당 버릇을고쳐놓기로 작심한 듯하다
여당은 대통령의 분노에전전긍긍하면서 침묵
言路가 막히면큰 불행을 부르게 된다
당분간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은 1일 TV 좌담회에서 "여당은 (대통령과)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남의 일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한나라당이) 지난 10년(간) 야당을 해서 (그런지) 여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착각했을지 모른다"고 했다.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한나라당을 '여당 하는 방법도 모르는 여당'으로 몰아세운 셈이다. 이 상황에선 여당의 누구도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하는 무모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번에 '한나라당의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대통령이 지명한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했을 때만 해도 여권(與圈)의 누구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을 것이다. 헌법과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원장의 첫 번째 조건은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수석비서관을 감사원장에 지명했다. 그것만으로도 결격 사유는 충분하다. 여론도 갈수록 악화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여당 지도부가 집단행동을 벌인 데는 그가 물러나는 것만이 '대통령과 여당 모두가 사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막 불거진 대통령에 대한 도전을 그대로 두면 임기 말에 다가갈수록 이런 일이 더 잦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대통령은 드러내놓고 안상수 대표와 한나라당을 박대했다. 여당 지도부가 나중에 대통령을 비공개로 만나 '사과'했다고는 하나 대통령은 아직 여당의 등을 다독거려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대통령은 여당의 가장 큰 잘못으로 "사전 협의 없이 당이 (먼저) 발표해 혼선을 준 것"을 꼽았다. 당시 한나라당의 행동이 볼썽사나웠던 것은 사실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연락을 주고받는다. 따로 만날 필요가 있으면 자동차로 30분만 움직이면 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무슨 작전이라도 벌이듯 이 문제를 처리했다. 대통령 인사(人事)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거세지는 가운데 한나라당만 살기 위해서 몸을 빼려고, 더 나아가 이 일을 통해 정치적 득점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란 이야기가 나올 만했다.
한나라당이 약삭빠르게 움직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가 '사전 협의 부재(不在)'를 문제 삼는다면 거꾸로 청와대는 국회 청문회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인사를 앞두고 사전에 여당과 얼마나 의견을 나눴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당에 청문회 현장에서 대통령의 인사를 몸으로 막아내는 궂은 일을 요구하려면 최소한 인사 발표에 앞서 여당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공평한 처사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문제를 꺼내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대통령이 화를 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대통령이 주문한 개헌 논의가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의 말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에선 개헌에 대한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설 연휴 직후 개헌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사흘 동안 갖기로 했다. 정작 이 정부 임기 내에 개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여당 의원은 극소수다. 정권 주류쪽 의원 중에서도 "개헌 성사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올해는 청와대의 표현을 빌리면 "전국 단위의 선거 없이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다. 그런데 대통령은 여당에 임기 4년차 첫 임시국회를 앞두고 개헌 논의를 주문했다. 대통령의 개헌론은 바뀐 시대 상황을 헌법에 담으라는 당위(當爲)에 가깝다. 하지만 개헌은 현실 정치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잘못하면 정권의 곳간 속 '정치 자산(資産)'만 탕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당이 고민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이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못할 뿐이다.
여당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민의(民意)를 파악해 그것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여당은 청와대 참모나 측근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하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당연한 일을 하는 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권력 내부에서 노(no)라는 목소리가 사라지면 언로(言路)가 막히게 되고, 결국엔 정권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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