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만남은 처음부터 준비되지 않은, 그리고 너무나 가벼운 만남이었다.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두 당사자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카드는 친박 세력의 눈에는 ‘오만한 시혜 카드’였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대표는 간단명료하게 ‘No’라고 답했다. 선출직인 원내대표 자리를 당헌·당규에 벗어나 대통령과 당 대표가 당연한 권한인 듯 원내대표를 사전에 선임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이유 때문이다.
대통령과 친이 세력들은 박근혜를 모른다. 박근혜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국민이지 ‘자리’나 ‘딜’이 아니다. “당이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어쨌든 친이 측에서 제시한 친박용 탕평 카드는 비현실적이고 정치적으로도 무의미하다. 그 이유는 다음 4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 시간 문제
400미터 계주 경기에서 겨우 100미터를 달린 주자의 바통을 이어받아 나머지 300미터를 달리는 것은 힘의 안배라는 측면에서 누가 보더라도 어리석은 짓이다.
마찬가지로 친박용 탕평카드를 친박 쪽에서 지금 받는 것은 힘의 안배라는 측면에서 손해이다. 시기적으로도 이명박 정부가 반환점을 돈 이후여야 하며 그 동안 친박세력은 힘을 축적하며 국민의 입장에서 한나라당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반환점을 돈 후 한나라당내에서 친박의 권력장악은 두 세력간의 담합에 의한 권력분할이 아니라 당내에서 합법적인 권력투쟁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정당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구도에 급격한 변화가 없는 한 시간은 박근혜 편이다. 그런데도 어떤 친박 의원들은 이명박 정권을 위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다음 대선에서 친이 세력과 한나라당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힘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친이 세력과 한나라당 당원들의 모래알과 같은 결집도를 보면 결국 차기 대선에 가서는 박근혜 전대표를 중심으로 모여들 수 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보면 국정운영 책임에 있어서 친이, 친박의 책임 분리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차기 대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 정치적 공간의 대립성
국정운영을 쥔 친이 세력과 달리 친박 세력은 선거공간에서 힘을 발휘하여왔다. 지난 총선과 이번 재보선에서 친박은 흔들리지 않고 선거공간에서의 우위를 재확인하였다.
서로 다른 정치적 공간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두 세력은 당협위원장, 공천 등과 같은 문제에서 충돌을 예고한다.
예견된 충돌은 정치를 멀리하는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한다. 하물며 원내대표 자리 안배로 그러한 문제들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하고 순진한 발상이다.
# 철학의 차이
필자는 이명박 정권을 친이정권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이명박 정권은 보수정권도 아니며 한나라당이 만든 정권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친이와 친박 사이의 철학 차이는 한나라당 당론수렴과정에서도 종종 나타났다. 특히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에 의해 한나라당이 움직일 때 친박 세력들은 거부감을 표시하였다.
같은 목적을 추구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두 세력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친이정권의 일방적, 분열적, 파괴적인 국정운영방식을 거부하는 친박 세력은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국민의 동의를 우선시한다.
원내대표는 그러한 방법론의 간극을 조율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너무나 다른 철학을 가진 두 세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특정계파 출신의 원내대표는 분열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 신뢰문제
지난 한나라당 경선기간 동안 나돌았던 말이 있다. “이번에 이명박, 다음엔 박근혜”라는 보수결집구호다.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보수층들은 확인되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런 보수집권 플랜에 수긍하며 이명박 정권창출에 기여하였다.
집권하자마자 그런 세간의 믿음을 한나라당 내부정치가 깨버렸다. 친이 정치인들이 언론에 나와 보수집권 플랜을 백지화 하는듯한 발언을 쉽게 하였던 것이다.
친이계 공성진 의원은 “냉소적이고 방관자적인 자세로 이 정권을 바라보거나 반대만 하는 분들, 순간적인 인기에 연연하면 다음 대권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잘못됐다고 본다”며 박근혜 전 대표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는 “박근혜 전대표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라면 정종복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기도 하였다.
선거참패 후 그의 발언은 낯간지러울 정도다. 그는 “경주 재선거 참패는 박근혜 전 대표를 끌어안으라는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공성진 의원과 같이 상황에 따라 친박 활용법을 바꾸는 것은 친박을 고작 ‘전략적 동거인’으로 자격제한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병 주고 약주는 친이 정치인들의 행동은 친박의 불신을 얻기에 충분하였다. 두 세력간 신뢰관계도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 지지자들과의 암묵적 약속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4.29재보선 결과가 한나라당에게 던진 교훈은 간단하다. 국민을 향하여 문을 열라는 것이다. 그러면 당 쇄신과 화합의 답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