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요한 친박 복당 요구로 ‘복당녀’ 비난 자초
■ ‘해당행위자’ 침묵 지원, 당 후보 지원은 거부
■ ‘박근혜 정치’의 상징인 ‘원칙’ 어디로 갔나?
■ ‘박근혜 총리’ 성사 가능성… MB와 화해 계기 될 것
▶박근혜 전 하나라당 대표가 상념에 젖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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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0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오찬장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
4. 정치지도자 박근혜는 없었다
-‘촛불’과 ‘쇠고기 파문’ 때 침묵이거나, 소극적 발언이거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를 ‘현 여권의 정치적 양대 축’으로 보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드물다. 박 전 대표가 현실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권의 고민은 바로 그 두 사람의 사이가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 측은 “박 전 대표가 큰 틀에서의 협력에는 인색한 채 계파정치에 함몰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더 많다”고 여긴다.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시절, 이회창 총재를 상대로 투쟁하던 때의 모습에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인사도 드물지 않다.
“대통령과의 회동 장면 등을 보면 박 전 대표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해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의 인식은 다르다. ‘국정의 동반자’라는 말만 해놓고 실제로 동반자 대접을 해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총선 공천 당시 친박 인사들의 대거 탈락이 단적인 ‘증거’로 거론된다.
박 전 대표의 측근 그룹에서는 “평소에는 외면하다 급하면 박 전 대표한테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인 것이 어디 한두 번이냐”고 반문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협조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대통령을 대하는 박근혜 전 대표의 기본 인식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 전 대표가 말로는 국정운영에 협조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며 거꾸로 박 전 대표의 신뢰성을 문제 삼는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로 평가됐던 촛불시위 당시 박 전 대표의 발언록을 예로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로서 아쉬운 대목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손꼽히는 정치인 박근혜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미국과의 쇠고기협상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불붙기 시작한 지난 5월6일, 박 전 대표는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이 재협상밖에 없다면 재협상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5월10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 자리에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이어갔다.
재협상에 무게를 두는 듯한 박 전 대표의 발언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이어졌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정부가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5월15일)
지도자에 걸맞은 ‘고민의 흔적’이 안 보인다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6월2일)는 발언에 이어 6월6일에는 “쇠고기 수입 문제를 재협상해야 한다”며 한층 더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일련의 발언들은 국회 본회의장 등에서 만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나온 것들이었다. 일부에서는 친박 인사들의 복당과 관련해서는 정식 기자간담회까지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큰 논란이 됐던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 입장 표명’에 그친 것을 문제 삼기도 했다.
정부 여당 인사들 사이에서는 “박 전 대표가 국가 신뢰도 하락 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재협상을 거듭 언급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나왔다.
촛불시위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치지도자로서의 고민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무 평이한 언급’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부 언론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박근혜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는 질책을 담은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폭력시위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박 전 대표의 언급도 바뀌었다.
박 전 대표는 6월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쇠고기 추가협상 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 뒤 고시했어야 했다”면서 “과격 시위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발언을 놓고도 “그 정도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랐다.
박 전 대표가 7월6일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올린 ‘7월을 맞이하며’라는 글도 “정국 상황을 보는 시각이 너무 안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불러왔다.
이 글에서 박 전 대표는 “올 여름은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고유가 문제와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 사정, 그리고 쇠고기파동 등으로 예년에 비해 더욱 무더운 여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고난을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저력을 가진 국민이다. 지금의 어려움도 모두 힘을 합치면 극복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자”고 적었다.
5. 정몽준 의원 급부상도 신경 쓰여
-‘소수파의 한계 극복’ 과제 간단찮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적잖은 논란 끝에 친박 인사들의 입당을 관철함으로써 한나라당 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성원 모두 ‘박근혜’라는 단일 대주주를 중심으로 끈끈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우선 정치적 자산으로 손꼽힌다. ‘친박’ 브랜드 하나만으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 서청원·홍사덕 두 의원은 나란히 6선으로, 한나라당의 최다선 의원 대열에 합류했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하면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1위에 손꼽힐 정도로 대중적 지명도와 폭넓은 지지기반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는 한나라당의 엄연히 ‘소수파’다. 지난 7월3일의 전당대회에서 친박 대표주자 격으로 출마했던 허태열 의원이 3위를 차지하는 데 그친 것이 현재 박 전 대표 그룹이 당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당의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의가 친이 그룹의 압도적 다수로 구성된 것은 향후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는 정치 분석가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앞으로 어떤 노선을 취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가장 유력한 전망은 바로 “당분간은 당내 현안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면서 외연 확대에 공을 들일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총선정국에서 떠안은 ‘계파 보스’ 이미지를 벗어 던지는 것이 급선무로 꼽힌다. 박 전 대표 측이 전당대회에서 허태열 의원을 조직적으로 지원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전당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정몽준 의원의 ‘약진’도 일정부분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할 대목이다. 정 의원은 친이 그룹의 집중 지원을 받은 박희태 대표와 접전을 벌이는 ‘예상 밖의 선전’으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친이 친박 모두의 견제 속에서도 당내 서열 2위에 오른 정몽준 의원이 ‘차기’에 대한 관심을 굳이 숨기지 않는 것도 박 전 대표 측의 신경을 건드리는 대목이다.
▶지난 6월2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친박계 의원, 친박연대 소속 의원들과 회동했다. |
6. 박근혜 스스로 대답해야 할 질문
-나는 대통령 ‘깜’인가?
대권을 꿈꾸는 박근혜 전 대표가 어떻게든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과제로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드는 사람이 많다. 요체는 지금처럼 불편해 보이는 관계를 유지해갈 것인지, 어떻게든 관계개선의 계기를 찾을 것인지 여부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은 “그것은 이 대통령 하기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급할 때만 박 전 대표한테 손을 내미는 모양새를 취해서는 관계개선은 요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 측 사람들은 “그것이야말로 박 전 대표 하기 나름 아니겠느냐”고 되묻는다. 이 말 속에는 여권 정치인이 현직 대통령을 무시하는 듯한 자세로 일관하면서 어떻게 대권을 생각할 수 있느냐는 ‘뼈’도 들어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의 획기적 관계개선의 돌파구는 정말 없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인사들이 주시하는 대목이 바로 ‘박근혜 총리 카드’다. 이 가능성은 이명박 정부 첫 조각 때도 거론됐고, 쇠고기 파문 와중에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일부 언론이 보도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이 대통령을 찾아가 박 전 대표를 국무총리 후보로 건의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상득 의원 본인이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여권 내부에서 ‘박근혜 총리’를 검토한 흔적은 일부 나타나고 있다.
한승수 총리 교체를 전제로 후임 총리 감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던 지난 6월 중순,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정보기관의 한 인사는 “현재의 난국을 일거에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박근혜 총리밖에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전 대표 측 인사들도 “진정성 있는 제안이 접수된다면 신중하게 고려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카드는 ‘설’로 그치고 말았다. 박 전 대표 측은 “거듭된 박근혜 의중 떠보기”라며 이 대통령과 청와대 측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박근혜 총리’ 성사 때는 MB와 관계개선 가능
하지만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박근혜 총리’가 언젠가는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단언한다.
“이 대통령은 지금 당장 박 대표를 총리로 앉히면 권력의 절반 정도는 떼줘야 한다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그러한 입장을 모를 리 없는 박 전 대표는 무리하게 총리를 요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언젠가는 박 전 대표를 총리에 앉힐 것이다. 물론 적절한 명분과 정치적 계산이 선행돼야겠지만, 박근혜 전 대표만한 대중정치인이 여권에는 없다는 것을 이 대통령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인사는 “박 전 대표로서는 어떻게든 이명박 정부가 성공을 거둬야 정권 재창출 분위기가 성숙돼 자신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나름의 명분만 주어진다면 박 전 대표가 흔쾌히 총리직을 수락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7월15일 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콴유 전 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지도자의 철학과 지도력이 그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일컬어지는 리콴유 총리의 업적을 평가하는 발언이었지만, 적잖은 언론은 이를 국내 상황을 빗댄 ‘정치적 발언’으로 풀이하려 들었다.
잇단 국정 난맥상으로 고전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지도자를 잘못 뽑는 바람에 한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느냐는 해석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처럼 짧은 말 한마디도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때로는 곡해되기도 하는 위치에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차기 대권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하면서 “왜 박근혜여야 하는가” “박근혜는 과연 대통령 감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답해 나가야 하는 과제도 함께 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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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기영 저널리스트·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