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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내 친이(親이명박)계와 친박(親박근혜)계간의 갈등이 이명박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간의 회동으로 무사히 봉합된 가운데 박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간의 질긴 악연(惡緣)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두 사람은 30여년 전인 1979년 '민주화 투사'와 '대통령의 딸'로서 첫 악연을 쌓은 이래 당내 계파 갈등의 카운터파트너로 선 지금까지 끈질긴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놓고 치열하게 벌어진 계파갈등에서는 박 전 대표와 이 의원간의 악연이 여실히 나타났다.
◇박근혜-이재오, 서로 "좌시하지 않겠다"
공천문제로 '물갈이론' '살생부' 등 흉흉한 소문이 나돌던 지난 10일 박 전 대표는 당내 친이계에게 "앞으로 공천하는데 있어서 과거로 돌아간다든지 또는 조금이라도 잘못해서는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당선인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첫날인 지난 17일 "옛날 야당하듯이 내 계보, 네 계보 챙기고 내몫 챙기고 '언제까지 뭘 해라' '뭘 좌시하지 않겠다' 이러면 국민들 눈에 곱게 비치겠나"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는 이같은 이 의원의 비판에 대해 중국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분을 챙긴다고 나쁘게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맞섰고, '친박계 탈당설' '한나라당 분당설'이 나오는 등 당내 계파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박 전 대표는 이재오 의원이 이 당선인의 특사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지난 23일 이 당선인과의 회동을 갖고 한나라당 공천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큰 틀에서 합의했다. 이 당선인은 이 회동 후 이방호 사무총장과 만나 "박 전 대표 측이 원하는대로 다 들어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재오 의원이 박 전 대표를 자극하지 않았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일로 이 의원의 입장이 어려워졌다. 친박계가 공천을 받는 만큼 친이계는 내부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선 전인 지난해 11월에도 이번 사태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진 후인 지난해 10월 말 이재오 의원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박 전 대표 측을 겨냥 "아직도 경선 중인 걸로 착각하는 세력이 당내에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오만의 극치"라고 맹비난했고, 이 사건으로 이 의원은 최고위원직에서 중도하차했다. 이 당선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도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박 전 대표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하며 박 전 대표에게 공개적인 사과메시지를 보냈지만 박 전 대표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경선 이후 두 사람은 각각 한 번씩 "좌시하지 않겠다"는 말을 던졌고, 이로 인해 이 의원은 한 번은 최고위원직을, 한 번은 친이계의 공천지분을 빼앗긴 셈이다.
◇이재오, 朴방생탑 비난했다가 고문·구속…12번 수술
박 전 대표와 이 의원의 악연은 이재오 의원이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을 맡아 경북 안동댐을 방문했던 197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안동댐에는 새마을봉사단 총재였던 박 전 대표가 자라와 붕어, 잉어 등을 방생해준 것을 기념하는 '영애 박근혜 방생기념탑'이 크게 세워져 있었고, 안동댐 건설공사 중 사고로 숨진 인부들의 위령탑이 한 쪽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재오 의원은 이를 보고 "이것이 유신 독재의 실체"라고 비난했고, 바로 다음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구속됐다.
이 의원은 2004년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안동댐에 갔는데 '대통령 따님인 새마음봉사단 박근혜 총재가 이곳에 들러 붕어 몇 마리를 풀었다'는 사람 키보다 큰 방생기념탑이 있었고, 댐 구석진 곳에 가보니 댐 건설을 하다가 죽은 20여 명의 인부 위령탑이 조그맣게 서있었다"면서 "강연회에서 '이런 게 바로 유신 독재의 실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라면 비석을 반대로 해놓지 않았겠느냐'라고 했다가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됐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또 "그때 서울구치소에 들어가니 김덕룡 의원이 옆방에 있었다. 거기서 맹장염을 앓았는데 꾀병이라며 복막염이 되도록 방치했다"면서 "겨우 수술을 해줬는데 배안에 거즈를 그대로 넣고 봉합해 12번 배를 쨌다"고 털어놨다.
◇이재오, 朴에 "독재자의 딸 아니라 독재 그 자체"
이후 '민주화 투사'로서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며 반독재 투쟁을 하던 이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국회의원이 됐다. 박근혜 전 대표는 2년 후인 1998년 4월 재보선을 통해 한나라당에 합류해 이 의원과 같은 배를 타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솥밥을 먹는 동료 국회의원이 됐지만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은 좀처럼 메워지지 못했다.
이 의원은 사석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박정희 딸'에 대한 반감을 수시로 표했고, 박 전 대표는 자신에 대한 험담을 전해듣고 당시 이회창 전 총재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17대 총선 직전인 2003년 12월로 당시 최병렬 대표는 박 전 대표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제안했으나, 당시 사무총장이던 이재오 의원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의원은 당시 회의 중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박 전 대표가 공천심사위원장이 되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 직후인 2004년 8월 이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박 전 대표에게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난했고,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3공, 5공이 당의 뿌리인지 모르고 들어왔느냐"고 맞섰다.
이 의원은 2004년 8월3일에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 대표는 유신 잔당이 아니라 유신 그 자체"라며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 독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며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朴, 당 대표 선거서 이재오 연설 중 자리 떠
2006년 1월 이 의원이 박 전 대표측 김무성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직을 차지하면서 박 전 대표와 이 의원은 당대표-원내대표의 조합을 이뤘다. 하지만 '적과의 동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6년 7월 이 의원은 당 대표직에 출마했다. 당시 당 대표 선거는 이 의원을 지원한 이명박 당선인과, 강재섭 대표를 지원한 박 전 대표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졌다. 당초 이재오 의원이 강 대표보다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결과는 강 대표의 승리로 끝났다.
이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서 실패한 것에는 박 전 대표의 영향이 컸다. 박 전 대표는 당시 전당대회에서 이 의원의 연설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했고, 이 장면은 당시 대회장에 있는 대형스크린을 통해 모든 대의원들에게 비춰졌다.
이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 박 전 대표가 연설 중간에 자리를 떠 대의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항의하며 당 최고위원회의에 한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질긴 악연을 유지해온 두 사람은 앞으로 본격화할 총선 공천과, 오는 7월로 예정된 당권 다툼에서 다시 한 번 치열한 한 판 승부를 벌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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