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수 국방장관이 뻣뻣했던 진짜 이유
“의연하게, 고개 숙이지 말라”
방북 前 군 원로·후배들이 한결같이 조언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7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입력 : 2007.10.12 20:09 / 수정 : 2007.10.14 08:21
방북 前 군 원로·후배들이 한결같이 조언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7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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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10.12 20:09 / 수정 : 2007.10.1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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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공연 때도 박수를 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연 당시 내 옆에 있던 북측 인사에게 ‘나는 68만군의 수장이다. 진짜 집단체조나 아름다운 장면에는 아낌없이 박수를 치겠지만 체제 선전, 사회주의 리얼리즘 같은 것을 표현하는 데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꼿꼿이 서서 인사한 것을)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 (위)김장수 국방장관이 10월 2일 평양 4·25문화회관 환영식에서 꼿꼿한 자세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아래)두손을 맞잡고 김 위원장에 고개숙여 인사하는 김만복 국정원장. photo 조선일보 DB
- 김장수 국방장관이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하고 돌아온 직후인 지난 10월 5일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의 얘기다. 어느 기자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꼿꼿하게 인사한 배경을 묻자 그가 한 답변이다. 김 장관은 “(보도를 보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너무들 주시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언론 보도 뒤로는 가급적 뒤로 빠졌다. 꼿꼿하게 했네, 고개를 숙였네 하는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한다”면서도 이렇게 답했다.
아리랑 공연 때 북한 체제 선전 등의 대목에선 의도적으로 박수를 치지 않았듯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의도적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밝힌 셈이다. 그는 이날 아침에 기자들을 만났을 때는“(키가 큰) 내가 고개를 숙이면 (김정일 위원장과) 머리가 부딪칠까봐 그랬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기간 중 세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낳은 것이 김장수 국방장관의 꼿꼿한 인사였다. 각종 포털과 언론사 홈페이지 등 온라인상에서도“의도적으로 그런 것이냐, 아니면 오랜 군생활로 군인 예법이 몸에 배 그런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며 치열한 댓글 논쟁이 벌어졌다. 김 장관의 행동에 대한 댓글 가운데는 부정적 의견보다 긍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김 장관의 행동을 의도적인 것으로 파악해 “68만군의 수장으로서 권위를 지켰다”“국방장관다운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싫지 않은 표정이다. 하지만 공식적 반응을 삼가며 극도로 말조심을 하고 있다. 자칫 김 장관이 ‘코드’에 맞지 않는 인물로 미운 털이 박혀 이제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김 장관의 뻣뻣한 인사가 화제가 되기 시작한 지난 2일부터 나타났다. 그는 정상회담 첫날인 2일 평양 4·25 문화회관 공식 환영식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면서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반면 바로 옆에 있던 김만복 국정원장은 허리를 크게 숙여 인사해 크게 대조를 이뤘고, 당연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방부 당국자는 “특별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군에 오랫동안 몸담으면서 꼿꼿하게 악수를 나누는 것이 몸에 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군 야전교범에 나와 있는 ‘경례 및 예절’ 규정을 인용했다. 거기에는 ‘허리를 굽히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흔들어 아첨하거나 비굴해 보이는 듯한 저자세 악수방법을 삼가야 한다’고 돼 있다. 또 ‘손은 약간 힘을 주어 가볍게 잡고, 상대방의 눈을 마주보며 자연스럽게 교환해야 하며, 손을 너무 흔들거나 두 손을 쥐는 것은 실례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김 장관이 단순히 군인 예법에 따라 행동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김 장관 본인도 어느 정도 인정했듯, 군 주변에선 김 장관이 장병들의 사기를 고려해 의도적으로 그랬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런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군의 한 소식통은 “김 장관이 정상회담 며칠 전 국방부 영내 육군회관에서 재향군인회장, 성우회장 등 군 원로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정상회담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군 원로들의 요청으로 마련된 이 자리엔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김상태 성우회장, 이상훈·이종구 전 국방장관, 김영관 전 해군참모총장, 이정린 육사총동창회장 등 대표적 인물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김 장관에게 “서해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반드시 사수하라”“잘못하면 제2의 이완용이 될 수도 있다”“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의연하게 소신껏 하라”는 등 많은 조언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마라”는 식의 조언은 없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김 장관이 군 선배들은 물론 후배들로부터도 ‘압박’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김장관이 군 후배들을 만나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조언을 구했더니“군의 수장으로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말고 의연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 일간지에 게재된 광고에서 김 장관이 언급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강경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지난 9월 19일 2개 일간지에‘김장수 국방장관은 용퇴하고 평양에 가지 말라’는 제목의 광고를 통해“70만 국군의 대표가 6·25남침 전범 집단의 수괴에게 경례하고 수도권 방어의 최일선인 서해 NLL을 팔아넘기는 제2의 이완용이 될 것인가” “김 장관이 국군의 주적 김정일에게 인사하는 장면은 국군 장병들에 대한 정훈교육 효과를 일거에 망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고 문안 중 ‘70만 국군의 대표가 6·25남침 전범 집단의 수괴에게 경례’‘김 장관이 국군의 주적 김정일에게 인사하는 장면’등 인사·경례와 관련된 대목이 두 차례나 나왔던 것이 흥미롭다. 일각에선 김 장관의 뻣뻣한 인사의 배경에 이런 격문에 가까운 광고들도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제 군 주변에선 김 장관이 11월 열릴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관심이 옮겨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공동어로구역·해주 직항로 등은 NLL의 위상을 건드릴 여지가 많은 사안이고, 이렇게 구체적이고 민감한 주제들은 대부분 남북 국방장관회담으로 처리 책임이 넘어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소신 있는 국방장관으로 부각된 김 장관이 수미일관 굽힘 없고 당당한 자세를 견지할지 주목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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