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가 두렵다면, 승리가 절실하다면 정신 차려야
입력 : 2007.05.10 19:08 / 수정 : 2007.05.10 21:57
- 강천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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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사정이 심각하다고 한다. 오는 12월 19일 시합에 내보낼 대표선수 선발방식 변경 여부가 불씨가 돼 당(黨)이 깨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한나라당이 알아서 할 일이다. 국민이 덩달아 심각해질 이유도, 그 걱정을 대신해 줄 까닭도 없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정치 세계에선 자력갱생(自力更生)이 원칙이다. 어차피 깨질 거라면 지금 깨지는 게 나라를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12월 19일까지는 7개월 남짓, 어림잡아 220일 남았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변한다. 나라 안도 변하고 나라 밖도 변하고 국민 마음도 변한다. 정치의 세계에서 그 세월이면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돼도 이상할 게 없는 세월이다. 지지율도 환호도 박수도 신기루나 한가지다. 그런 허망한 걸 믿고 기댔다간 엉덩방아를 찧게 돼 있다.
더구나 정치는 혼자서 뛰는 기록(記錄) 경기가 아니다. 선착순(先着順)에 따라 승패가 가려지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당장은 콩가루 집안 같아도 언젠가는 여권(與圈) 선수가 무대에 올라오게 돼 있다. 그것도 이 선수 저 선수가 우르르 몰려드는 게 아니다. 여권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고비와 암벽 등반 같은 아찔아찔한 장면들을 버무려 관객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정교한 연출 아래 단일화(單一化) 대표선수를 내보낼 것이다. 휘황한 조명을 받으며 오른손을 번쩍 들고 만면에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무대 중앙으로 나서는 그 선수 모습이 눈에 잡히는 듯하다. 그 얼굴이 뜻밖이면 뜻밖일수록 박수와 환호와 호기심도 높아간다. 그 순간 정치 극장의 스포트라이트도 지난 1년 365일 내내 비추고 또 비춰 신물 난 야권 대표선수로부터 갓 등장한 여권 대표선수에게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정치 극장에서도 헌 상품보다는 새 상품이 눈길을 모은다. 여권의 무대 연출자는 4년 반 전 그렇고 그런 물건을 대박 상품으로 포장해냈던 가락 있는 연출자다. 결전(決戰)의 날인 12월 19일까지 자기네 상품의 빛이 바래지 않도록, 그래서 소비자의 손길이 그 쪽으로 절로 나가도록 신상품 출하(出荷) 시기를 절묘하게 조절한 것도 그들 솜씨다.
이 대목에 이르면 정치극장은 본래의 혼돈(混沌)스런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이 극장에선 어떤 일도 예상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고, 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예상 밖이라고 할 수도 없다.돌이켜 보면 무슨 ‘수학 공식(公式)’이나 되듯이 행세해 오던 ‘정치의 상식’도 다 헛것이었다. 그 헛것을 딛고 그 헛것에 기대서 당내(黨內) 예선(豫選)이 곧 본선(本選)이라고 큰소리를 쳐왔다. 그렇게 허송세월한 지난 몇 달의 어리석음이 가슴에 사무치지만 지금 와선 어쩔 도리가 없다. ‘대통령 선거는 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국민 심판’이라는 정치 공식이 이렇게 허무한 것일 줄은 미처 몰랐다.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을 낳고,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을 낳고…’하는 이 나라 대통령 선거 역사의 몇 토막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 알량한 공식에 왜 그렇게 휘둘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충청+호남’이란 여권의 지역전략에 ‘TK+ α (알파)’라는 또 다른 지역전략으로 맞서면 승산이 충분하다던 애송이 당내 전략가에게 귀를 빌려준 것도 실수였다. 구악(舊惡)에 구악(舊惡)으로 맞섰으니 명분마저 놓쳐버렸다.
표(票)는 중간으로 모인다는 말에 귀가 번쩍해서 ‘원칙의 깃발’마저 뽑아 들고 허둥댄 철부지 같은 행동거지도 부끄럽기만 하다. 원칙이 무너진 마당에 중간이라고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거기 표가 모이면 얼마나 모이겠다고 그랬는지 그저 후회막급(後悔莫及)이다.세상을 잘못 살면 언젠간 ‘어영부영할 때부터 내 이럴 줄 알았다’는 탄식(歎息)같은 비명(碑銘)을 무덤 앞에 새길 수밖에 없게 되는 법이다. 정치인도 정당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ㆍ박근혜씨는 지금 이 순간 이 정도 공포영화 한편쯤은 마음 속에서 돌려볼 줄 알아야 한다. 필름이 돌아가면 한뼘 땅 넓혔다고 기세등등할 것도, 한뼘 땅 잃었다고 악을 쓸 것도 아니란 걸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이어 ‘승리가 진짜 절실한가, 그럼 지금 한발 물러서라’ ‘패배가 정말 두려운가, 그럼 지금 한발 물러서라’라는 누군가의 비명(悲鳴)같은 외침이 가슴을 때릴 것이다. 가슴을 치는 소리는 가슴으로 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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