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대통령/넘현대통령

청와대 출입기자가 본 ‘청와대 참모들’

goldking57 2007. 4. 22. 20:31
  • 청와대 출입기자가 본 ‘청와대 참모들’
  • [주말섹션 Why?]
    임기말에도 꿈쩍 않는‘님 향한 일편단심’
    술취한 비서관, 기자에 “대통령 좋은 사람… 잘 써달라”
    “권력정치 안했기 때문에 레임덕 극복할 것” 자신감
    장기적으론 ‘노무현 사단’으로 뭉쳐 현실정치할 듯
  • 신정록 기자 jrshin@chosun.com
    입력 : 2007.04.20 23:57 / 수정 : 2007.04.22 13:59
    •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참모들은 충성심에 관한 한 역대 최강인 것 같다. 정권 임기가 10개월 남짓 남은 이쯤 되면 비서실 직원들은 각자도생(各者圖生), 제 살길 바쁜 게 상례다.

      그런데 이 정권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대선판에 기웃거리는 사람도 많지 않다. 정권은 끝나도 ‘노무현식 정치’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지금의 청와대다. 바깥에서 보는 노 대통령과, 참모들이 보는 노 대통령이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지난 2월 초순 한 비서관이 새벽 1시쯤에 전화를 걸어왔다. 술이 잔뜩 취한 그는 기자에게 “제발 좀 잘 써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대통령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다음날 그는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에 대해 이런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몰릴수록 똘똘 뭉치게 되는 이치에서일 수도 있고,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에 대한 당연한 태도일 수도 있다. 또 청와대 참모들 중 정부 부처에서 파견나온 정책 파트 직원들을 제외하고 정무·홍보·민정 파트 직원들 대부분이 운동권 출신인 데서 비롯되는 동질감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의 노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는 바깥에서 보는 것 훨씬 이상으로 ‘순도’가 높다.

      청와대 참모들도 노 대통령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한다. 과도한 콤플렉스, 그리고 그것과 동전의 양면 관계인 지나친 공격성, 편향성 등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전직 비서관은 “콤플렉스 덩어리야, 그래서 대통령이 됐지만…”이라고 했다. 거친 말을 지적하는 참모들도 많다. 노 대통령이 말실수를 할 때마다 “허, 참”하고 입맛만 쩍쩍 다신다. 몇몇 핵심 측근에 편중된 인사를 말하는 사람도 많다. “역시 이광재(의원)가 세더라고” “그래도 안희정한테는 안돼”, 이런 말들을 예사로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청와대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노 대통령 식의 정치가 맞다”고 말하는 참모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말하는 노 대통령식 정치는 ‘비(非)정치의 정치’다. 계산과 수에 의존하는 정치, 돈과 권력의 정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력과 수(數) 싸움에 의존하는 정치가 아니어서 우스꽝스럽고 아마추어처럼 보이지만 성공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정치, 결국 성공하는 정치라는 것이다.

      한 비서관은 “권력으로 누르는 식의 정치를 했더라면 권력이 약해지는 순간에 끝이고 바로 레임덕”이라면서 “기성의 방식으로 정치를 했더라면 지금쯤 아마 곤죽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과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 청와대 참모들 중에는 “우리는 말과 정책의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임기말 레임덕 양상도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권력으로 군림하는 정치는 권력의 힘이 떨어지는 임기말에 비리게이트를 불러오게 되어 있고 그래서 임기 말이면 아무 것도 못하지만, 자신들은 권력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레임덕이 오더라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영향력이 없어지는 정도이지 정책 추진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노 대통령이 자신들을 진두에서 지휘해온 총사령관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믿는 듯 하다.

      최근 비서실을 떠난 한 참모는 “얼마 전 한나라당 핵심 간부인 학생운동 시절 친구를 만났더니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남·북정상 회담이나 4개국 정상회담 같은 것은 가을 이후에는 안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면서 “착각도 큰 착각이다. 노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내년 2월24일에도 할 사람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이런 정서들 때문에 “부동산 빼고 꿀릴 게 없다”는 말이 노 대통령에서부터 행정관급까지 한결같이 나오는 것이다. 한 비서관은 “지난 4년여 동안 세대·이념·세력·지역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거칠게 표출된 것은 맞지만 나중에 보면 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노 대통령이 말한 ‘구시대의 막내’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이 정권에서 장·차관, 청와대 비서진, 공기업 임원을 지낸 사람들을 묶어 ‘참여정부 평가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남들이 평가해주지 않으면 스스로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선에서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더라도 그 이후에 이 정권의 주요 정책을 지키는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행정복합도시나 지방의 혁신도시가 후퇴하거나 부동산 세제가 바뀌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노무현 사단’의 이름으로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한 전직 청와대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62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퇴임하고 ▲주요 참모들이 대부분 40대 중반~50대 초반이라는 점 등을 거론하면서, ‘퇴임 후 정치’를 시도하는 첫 대통령과 참모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요즘 청와대 참모들 중에는 “이번 대선도 결국 범여권이 이긴다”고 장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 지지율이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작년 말과, 밀리고 밀려서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던 지난 2월 말에도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여권 재편이 어떻게 될지는 전망할 수 없으나 올해 연말의 시대상황에는 여권이 더 맞다는 것이다. 남북화해, 복지중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 등 이 정권이 던진 어젠다 쪽으로 한나라당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대선은 결국 앞으로 5년에 대한 기대를 거는 선거이기 때문에 큰 어젠다가 없는 한나라당, 어젠다를 이미 다 선점한 범여권 중 어느 쪽이 이기겠느냐는 얘기다. 범여권 후보가 없는 데 대해서는 때가 되면 나오게 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생각이 대착각인지, 정말 맞을 것인지 전망하기는 이르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대단한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통령에 그 참모들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