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창균 논설위원
1988년 김영삼 공천 1세대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다퉈
1996년 공천 홍준표·이재오, 이명박 정부 주역으로 활약
野 차세대는 '盧키즈'가 대기… 與 내년 공천에 右派 미래 달려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홍준표 대표가 이틀 후 상도동을 찾았다. 홍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큰절을 한 뒤 "제가 YS 키즈(아이들) 출신입니다"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가 공천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홍 대표처럼 멋있는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 없다"며 흐뭇해했다.
10년 전쯤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2002년 4월 말 민주당 대선후보 순회경선이 마무리되면서 노무현 후보가 확정됐다. 노 후보는 사흘 후 상도동을 방문했다. 노 후보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김 전 대통령에게 보이며 "총재님이 13년 전 일본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신 시계입니다. 이렇게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에 맹장(猛將)이 많은데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정말 장한 일"이라고 격려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천권을 제대로 행사했던 것은 통일민주당 총재로서 치른 1988년 총선, 그리고 현직 대통령 때였던 1996년 총선의 두 차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김 총재에게 발탁된 YS 키즈 1세대이고, 홍준표 대표는 1996년 김 대통령으로부터 낙점받은 YS 키즈 2세대다.
김 전 대통령의 두 차례 공천은 경쟁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했던 '개혁 공천' 사례로 꼽힌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 때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으로 1996년 YS 공천을 연구하고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은 대통령 임기 4년차에 치르는 불리한 여건의 총선에서 서울 지역구 47곳 중 27곳에서 승리했다. 그때 수도권에서 금배지를 단 정치신인들은 홍 대표를 비롯해서 이재오 특임장관, 김문수 경기지사, 안상수 전 대표, 맹형규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다. 이명박 정부의 상당수 주역들이 YS 키즈 2세대들이다.
1988년 총선 때 공천을 받았던 YS 키즈 1세대들은 민주당 쪽에서 활약했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 자리를 놓고 격돌한 노무현, 이인제 두 사람이 YS 키즈 1세대 동기생이다.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1순위 자리를 예약해 놓은 손학규 대표는 김영삼 대통령 임기 첫해 재·보선에서 금배지를 단 YS 키즈 1.5세대에 해당한다.
YS는 대통령 집권 초 군(軍)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는 등의 개혁조치로 박수를 받았지만 나라를 IMF 금융위기 속에 빠뜨려 놓은 상태에서 퇴임했다. 그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YS의 아이들'이 여·야를 넘나들며 주역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YS의 '자식 농사'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기업이 새로운 투자를 한 뒤 그 열매를 손으로 만져볼 수 있을 때까지는 최소 6~7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현재 사업이 잘되고 있다면 6~7년 전에 내린 의사결정이 옳았다는 것이다. 스포츠에도 투자 회수 기간이 필요하다. 1998년 US여자오픈골프대회에서 박세리 선수가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트러블 샷을 하는 투혼(鬪魂) 끝에 우승했던 장면은 IMF 금융위기 속에서 우울했던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때부터 골프채를 휘두른 박세리 키즈들이 미국 여자 골프대회에서 본격적인 우승 사냥에 나선 것이 2008년 무렵이다.
1988년 정치를 시작한 YS 키즈 1세대들은 2000년대 초 정치무대의 주역이었다. 1996년에 출발한 YS 키즈 2세대들은 지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정치라는 밭에 뿌린 씨앗이 싹트고 자라서 소출을 내려면 10년 넘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야권(野圈)에선 '김영삼의 아이들' 다음 시대를 '노무현의 아이들'이 준비하고 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좌희정, 우광재'가 충남지사와 강원지사, '리틀 노무현' 김두관이 경남지사에 당선됐다. 다른 친노(親盧) 486들도 기초단체 시장과 군수로 포진했다. 김두관 지사는 2012년 대선 때 친노(親盧) 대표선수로 나설 수 있는 와일드 카드 중 하나다. 안희정·이광재 지사는 이르면 2017년부터 정치권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에도 쟁쟁한 차세대 주자들이 있지만 야권의 '노무현 아이들'처럼 한 시대를 끌어주고 밀어줄 만큼 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는 내년 총선 공천 칼자루를 휘두를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며칠째 편을 갈라 으르렁거리더니 12일 마침내 한판 붙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한나라당의 내년 공천이 10년 후 대한민국 보수우파 진영의 성패(成敗)를 좌우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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