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두식 정치부장
'4대강 전도사'에 이어 개헌까지 앞장선 이 장관은 정권의 忠臣…
그러나 그의 개헌 수레엔 한나라당을 날려버릴 수있는 폭탄이 쌓여간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이재오 특임장관이 언제부터 '개헌 신봉자'가 됐는지 선뜻 떠오르질 않는다. 그는 작년 8월 특임장관이 되고나서부터 개헌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이 장관이 개헌 주장을 펴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이 장관 측에 물었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다. 한 측근은 "과거에도 조금씩 이야기했는데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2009년 8월 '함박웃음'이란 책을 냈다. 이 장관에게 이 책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2008년 4월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명박 정권의 이인자라는 이 장관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두 달 만에 치러진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것도 자신이 20년 가까이 관리해 온, 고향이나 다름없는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에서 졌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이 장관은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보낸 10개월의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써낸 책이 '함박웃음'이다. 그는 이 책에 '대한민국의 21세기 희망비전'이라는 다섯 가지 제안을 담았다. 미국에서 혼자 지내며 나라의 진로에 대해 고민한 끝에 제시한 국가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이 제안 속에는 물론이고 책 어디에도 개헌이란 말이 나오질 않는다.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이 장관에게 개헌은 절실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장관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엔 '4대강 전도사'를 자처했다. 6개월 전부터 4대강이 개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의 머릿속에 개헌이라는 '신앙'을 불어넣은 사람은 이 대통령인 것 같다. 이 장관도 굳이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장관은 '현 정권의 충신(忠臣)'이다. 정권마다 실세 행세를 하는 사람은 많아도 대통령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조차 "대통령을 위해 온몸을 던지겠다는 이재오 장관의 자세만큼은 인정한다"고 했다.
그런 이 장관이 최근 온갖 구설(口舌)과 음모론에 시달리고 있다. 개헌 때문이다. 정치권의 다수가 "개헌은 어렵다"고 하는데도 이 장관은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다. 다수가 볼 때 '안 될 일'을 누군가 붙들고 있으면 그 사람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왜, 무슨 의도로' 그 일을 하는가를 따지기 마련이다. 지금 이 장관의 처지가 그렇다. 친박(親朴·친 박근혜) 진영은 "개헌 프로젝트는 '박근혜 죽이기' 전략"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 장관이 개헌의 동력을 다시 살리기 위해 야당에 연정(聯政)을 제안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부터 이 장관 측이 '박근혜 대세론은 연말이면 꺼진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 이 장관이 개헌에 매달리는 진짜 이유는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정치적 생존을 꾀하기 위한 것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장관 스스로 이런 논란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 그는 개헌론을 펴면서 오해를 부를 만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공개적으로 "개헌을 위해서 가장 강력한 상대와 맞서겠다. 나는 다윗이고 상대는 골리앗","(대선) 2년 전부터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일하는 것은 국민을 많이 피곤하게 한다"는 말도 했다. 세상은 그의 이 말을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이 장관은 현 상황에 대해 무척 억울해한다고 한다. 국가를 위한 고민 끝에 나온 자신의 개헌론에 대해 모두가 엉뚱한 정치적 해석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관도 지난 2007년 초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자 "다른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이 폈던 개헌론과 지금 이 장관이 펴는 개헌론엔 큰 차이가 없다.
지금 이 장관은 여당 분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장관이 개헌의 고삐를 죌수록 친이(親李)·친박 간 감정의 골은 깊어갈 것이다. 양쪽 모두 여당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말빚이 쌓이다 보면 돌이키기 힘든 지경에 이르는 게 정치다. 이 장관을 둘러싼 소문들을 듣다 보면 한나라당은 이미 둘로 쪼개진 상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장관이 끌고 가는 개헌 수레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대선에선 힘을 모은 쪽이 이겼고, 분열은 패배로 이어졌다. 개헌의 당위성만으로 밀고 나가기에는 문제가 너무 커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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