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다시 보는 ‘섬기는 리더십’

goldking57 2008. 5. 14. 01:44
다시 보는 ‘섬기는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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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소리소문없이 많이 퍼진 유행어 중에 “이게 아닌 게벼∼?”란 게 있다. 느리고 어눌한 충청도 사투리 발음으로 끝을 살짝 추어올려줘야 말맛이 제대로 난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예상보다 결과가 시원찮을 때 슬쩍 던지는 말이다. 뭔가를 선택했는데 그게 잘못된 것으로 판명났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는 말로도 쓰인다. 가벼운 실망감과 약간의 책임 회피를 동반한 두루뭉술한 어법으로 쓰임새가 꽤나 넓고 다양하다. 굳이 우겨서 들어선 길이 엉뚱한 곳이거나, 벼르고 맛본 음식이 별로일 때 쓰면 딱 제격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유난히 자주 들린다. 등산길이나 음식점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새 정부에 대한 품평에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것일까. 역대 최대의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출범 석 달도 안 돼 20%대로 주저앉았다고 한다. 줄어든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지지율이야 떨어질 수도 있고, 앞으로 잘하면 또 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대통령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일을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정부가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아니올시다’인 것이 문제다. 한창 기세등등 뻗치고 나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사사건건 우왕좌왕, 지리멸렬이다. 도무지 출범한 지 겨우 두 달이 갓 지난 새 정부라고 봐주기가 어려운 모습이다.

이 대통령을 찍었건 안 찍었건 일단 대통령으로 뽑힌 이상 잘 해나가기를 바랐던 게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었을 터다. 그런데 두 달간 하는 품새를 보니 “어라, 이게 아닌 게벼?”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의 의심은 불안감과 실망감으로 변한다. 이 대통령을 찍지 않았던 사람들의 의심은 곧장 거부감과 반대심리로 이어진다. 야당과 일부 진보세력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 파문을 빌미로 본격적인 이명박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 그야말로 장이 선 것이다.

이유는 많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불거진 돌출 발언, 새 정부 조각과 청와대 수석 인선에서 보인 인사의 난맥상, 끊이지 않는 부처 간 불협화음과 조정능력의 부재, 총선 공천과정의 혼선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불화, 거칠고 서투른 공공기관장 교체, 그리고 급기야 반대세력들을 총결집시킨 쇠고기 협상 파문에 이르기까지. 꼽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과연 이런 이유만으로 민심이 등을 돌렸을까. 아니다. 고작 두 달간 잘못을 해봐야 얼마나 했을 것이며, 실수라고 해봐야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겠는가. 그것 때문이 아니다. 정작 실망한 것은 미래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이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면 잘 될 것이란 믿음이 꺾이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당선 일성은 “국민을 섬기겠다”는 것이었다. 새 정부는 지난 두 달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국민에게 무얼 어떻게 하겠다고 소상하게 설명하고 설득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대통령을 좇아 아침부터 밤늦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뿐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해 마무리지은 게 없다. 대통령이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야 범인이 잡히고, 손가락으로 꼭 짚어줘야 전봇대가 뽑힌다. 그나마 내놓는다는 정책은 뜻이 좋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다. 1970년대식 물가대책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 전상서에 가깝다. 이걸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고 할 수는 없다.

‘타임’지는 1930년대 대공황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장장 12년간 미국을 이끌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20세기 최고의 지도자로 선정했다. 그러면서 그의 성공 비결은 국민을 감동시킨 친밀한 신뢰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루스벨트는 재임기간 중 무려 1000번이 넘는 기자회견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의 마음에 다가갔다. 그렇게 국민의 신뢰를 얻었기에 나라를 절체절명의 대재앙에서 구할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은 광우병 논란 끝에 정부의 위신이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실수는 바로잡으면 되고, 성과는 앞으로 내면 된다. 그러나 믿음을 잃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