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 유시민이 대선출마 선언을 한다고 한다. '교활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치밀한 유시민이 장고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면 이는 범여권 대선구도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시민 출마가 기정사실화되자 지난 6월 22일 이후 50일 가까이 칩거 상태에 들어갔던 친노논객 서영석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서프라이즈 댓글을 통해 "하루에 두번씩 글을 쓸 수도 있다"며 의욕의 일단을 드러냈다. 무엇이 이와같은 변화를 촉발시킨 것일까?
이미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범여권 세력의 양대 주주는 노무현과 김대중이다. 지금까지의 범여권 통합 움직임은 동교동이 김홍일을 메신저로 활용하는 가운데 민주당출신 통합세력(김효석, 이낙연 등)과 열린당 선도탈당세력(김한길, 양형일 등)을 통합의 촉매로 활용하는 구도로 전개되어 왔다. 이들을 통해 김대중이 노린 것은 민주당(박상천, 조순형 등)을 사실상 해체시킴으로써 통합의 명분과 주도권을 민주당으로부터 빼앗아온 후 통합신당 창당을 가속화함으로써 열린우리당 잔류파를 고립시키는 구도였다. 다시말해 김효석 등은 민주당을 내부에서 흔들고, 김한길 등은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민주당 내부에 침투하여 무혈 점령을 한다는 시나리오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과정에서 두가지 돌출변수가 생겨버렸다. 첫째는 조순형의 급부상이고, 둘째는 아프가니스탄 인질피랍 사태다. 김대중의 '훈수정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있어서 공통분모를 갖고있는 조중동과 한겨레가 일제히 '조순형 띄우기'에 나서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조순형이 정동영과 이해찬을 밀어내고 손학규에 이어 범여권 2위로 부상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에 고무된 박상천은 '민주당 독자후보론'을 내세우면서 동교동과의 결별 및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통합신당과 확실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프가니스탄 인질피랍 사태까지 터지면서 김대중의 입을 원천적으로 봉쇄시켜버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인권문제를 제쳐놓고 통합에 올인할 수 없다는 명분적 상황 때문에 동교동의 행보가 꼼짝달싹도 못하게 갇혀버렸다.)
본래 김대중의 계산은 김효석과 김한길을 내세워 박상천과 손학규를 포용하는 가운데 범여권 통합신당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함으로써 민주당 잔류파 및 열린우리당 잔류파를 동시에 압박하고, 이러한 흐름을 발빠르게 가시화시킴으로써 '대세론'을 앞세워 호남 민심을 공략하겠다는 것이었다고 분석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두가지 변수로 인해 민주당의 스탠스가 바뀌고 동교동의 입과 발이 묶임에 따라 이와같은 '빠르고 일사불란한' 통합의 밑그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고, 그러는 동안에 적지않은 시간이 흘러가고 이것이 호남의 역풍까지 초래하면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급조 방식으로 신당 창당이 기정사실화되기는 했지만 이같은 밑그림으로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어느 쪽에게도 어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바로 이와같은 상황에서 유시민 대권출마가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범여권 통합의 주도권이 김대중으로부터 노무현에게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통합 민주신당'은 대단히 이질적인 제 세력들이 모여든 일종의 '잡탕정당' 모양새를 띄고 있다. 처음부터 '통합 민주신당' 창당의 노림수가 민주당이 갖고있는 상징성 및 호남지분을 빼앗아오는 것이었기에 민주당이 빠져버린 그림으로는 열린우리당과 시민사회세력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결국, 민주당의 합류가 전제되지 않는 한 열린우리당 탈당파 및 시민사회세력들은 더 이상 신당에 머물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될 수 밖에 없고, 이렇게되면 통합의 주도권이 신당으로부터 열린우리당으로 다시 넘어가게 될 수 밖에 없다.
민주당의 '독자노선'과 호남에서의 '脫김대중 현상'이 현실화된 이상 이제 김대중은 더 이상 범여권 통합의 변수로서 작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통합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누구이겠는가? 그것은 남은 양대주주 중 한 사람인 노무현이다. 그리고 유시민은 노무현과 친노세력이라는 막강한 배후를 등에 업고 노무현의 대리인으로서 직접 '정권 재창출' 밑그림을 그리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물론, 우호세력보다 안티세력이 몇갑절 더 많은 유시민의 대권후보로서의 가능성은 아직 검증된 것이 없지만 그가 갖고있는 '노무현의 腹心'으로서의 상징성과 친노세력에게 갖는 영향력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현재 수면 위로 부상해있는 범여권 후보 중 가장 강력한 조직력과 영향력을 갖는 인물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현재 범여권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 출마가 '민주당 중심' 통합으로부터 '열린당 중심' 통합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간 것임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이는 빠른 시간 내에 '통합 민주신당'이 해체되거나 열린우리당과의 당대당 통합이 가시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통합 민주신당'이 해체된다면 이는 열린우리당 탈당파의 열린우리당 복귀 및 정동영계 및 손학규계의 '독자노선 추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열린우리당과의 당대당 통합이 가시화된다면 이는 정동영계 및 손학규계가 '통합 민주신당'에 잔류하건 열린우리당과의 당대당 통합에 참여하건 상관없이 사실상 고사(枯死)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시당초 정동영과 손학규의 배후에 김대중이 있었고, 이해찬과 유시민의 배후에 노무현이 있었던 상황에서 김대중이 튕겨져나갔으니 손학규와 정동영이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다.
범노무현 세력을 결집하는 흐름의 선두에 유시민이 섰다는 것은 범여권의 전략이 2002년 노무현에 이어 또한번 '호남이 지지하는 영남후보'라는 그림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이 승리할 것이라는 밑그림을 전제로 깔고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5년 전 영남후보인 노무현을 지지했음에도 '대북송금 특검'과 '민주당 분당'이라는 아픔을 겪은 호남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이번 2007년 대선 만큼은 정당도, 정책도, 공약도 모두 관심 밖이다. 이들이 가장 유심히 지켜볼 부분은 바로 '호남을 향한 진정성'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로 결정될 경우 호남은 지난 2002년에 이어 또한번의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범여권 후보 중 호남에 '안티계층'이 가장 많은 1순위가 유시민이고, 2순위가 이해찬임을 감안할 때 한나라당 경선에서의 이명박 승리는 호남으로 하여금 '밉지는 않지만 믿을 수 없는' 이명박과 '너무도 밉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시민 중에서 한명을 골라야 하는 대단히 잔인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이렇게되면 비록 호남에서 2002년 노무현처럼 9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60%대의 득표율은 가능해진다. 여기에 영남출신 후보로서 유시민이 경상도에서 20%대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수도권에서는 세대간 대결 구도를 형성하면 현재 범여권이 그리고 있는 그림 중 가장 접전을 벌일 수 있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충분히 욕심내볼만한 그림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범노무현 세력의 그림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할 경우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비록 현재는 한나라당 내부경선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경직된 보수'로 인식되고 있기는 하나 박근혜가 갖고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진정성'과 '유연성'이다. 박근혜의 진정성은 특히 호남과 서민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하고 있으며, 유연성은 동교동 방문과 김정일 면담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만일 박근혜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하여 호남을 향해서는 '진정성'으로 접근하고, 김대중을 향해서는 '유연성'으로 접근한다면 범여권의 시나리오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특히, 범여권 통합 밑그림 속에서 본의 아니게 배제되어버린 김대중이 박근혜와 손잡을 경우 그 파괴력은 '메가톤급'으로 발전하여 범여권을 초토화시키게 될 것이다.
물론,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더라도 호남과 김대중을 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명박에게는 두가지 큰 약점이 있다. 첫째, 호남에서의 지지층이 상당부분 범여권 지지층과 겹친다는 것이고, 둘째, 김대중과의 협력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상징성과 모멘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박근혜의 경우 호남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親박정희-육영수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고, 산업화세력의 적통(박정희)과 민주화세력의 적통(김대중)이 손잡았다는 상징성으로 인해 박정희와 김대중이 역사적 평가에 있어서 함께 승리자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을 수 있다.
이와같은 상이한 그림으로 인해 범여권에 있어서 이명박은 '희망'이요, 박근혜는 '공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김성호 법무장관의 경질도 이와같은 측면에서 분석한다. 즉, 청와대가 법무부와 검찰을 향해 '이명박 죽이기'가 아닌 '적당히 치고 빠지기'를 할 것을 김성호에게 지시했는데 일선 검사들의 소신 수사로 인해 이와같은 그림이 깨지자 그 책임을 물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김성호 경질과 때를 맞춰 이명박 캠프 소속 임모씨 및 김모씨가 구속되고, '박근혜 폭로회견' 배후의 전모가 밝혀진 것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정말로 청와대가 이명박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고작 주민등록초본 몇장 띄어보고, 전과기록 조회해보고, 대운하보고서를 흘리는 정도로 끝났겠는가? '김경준 9월 송환'이야말로 청와대의 의중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다.
이제 선택의 몫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넘겨져있다. 필자같은 하찮은 논객도 알고있는 뻔~한 그림을 한나라당 지도부라는 강재섭이나 김형오 같은 작자들이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이명박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믿을 곳은 한나라당 지지자들 밖에는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필자가 써내려온 글 갖고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무능 탓이다. 그러나, 탓하지만 말고 딱 두가지만 생각하기 바란다. (1) 호남을 끌어안지 않고서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가? (2) 범여권 후보와의 세대간 대결에서도 과연 수도권과 충청이 한나라당의 견고한 지지세로 남을 수 있을까? 한나라당 지지자들,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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