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뉴욕 현대미술관(MoMA) 주관 ‘데스티네이션 디자인 (Destination Design)’ 행사의 여섯 번째 대상 지역으로 선정됨에 따라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MoMA 디자인 스토어에서 전시·판매되게 된 것이다. MoMA는 한국 측 후원사인 현대카드와 손잡고 1년여의 준비를 거쳐 10일 (현지시간) 뉴욕에서 공식 개막식을 열었다.
2005년 시작된 이 행사는 해마다 두 번씩 세계 각국 또는 주요 도시를 정한 뒤 현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골라 MoMA 디자인 스토어의 정식 상품으로 출시하는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핀란드·덴마크 두 나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베를린·도쿄 등 세 도시가 대상 지역으로 뽑혔다.
이번 행사를 위해 MoMA 관계자들은 2007년 서울을 방문, 서울 인사동·삼청동 등을 뒤져 한국 디자인의 수준을 가늠했다. 이 결과 한국 디자인의 역동성이 좋은 평가를 받아 대상 지역으로 선발됐다고 한다. 이후 MoMA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공모, 엄격한 심사를 거쳐 40여 명이 만든 75점의 작품을 추려 냈다. 이들 중에는 색동·백자 등 한국의 고유미를 살린 것도 있었지만, 국경을 초월한 기발하면서도 범세계적 작품도 많았다.
윤상종 청강문화산업대 교수가 디자인한 ‘숲 컵 세트 (Forest cup set)’는 한국 전통 백자 표면에 솔잎 문양 등을 넣은 작품이다. 윤 교수는 “도드라진 문양이 모양도 살릴 뿐 아니라 컵을 잡을 때도 미끌어지지 않게 디자인 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유명 디자인 전문지인 ‘프레임’에 의해 ‘주목받는 디지이너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힌 박진우씨는 세계 명화에 현대적 터치를 가미한 ‘르 마스터피스 백’을 제작해 눈길을 모았다. 재활용 디지인 전문업체인 ‘에코파티 메아리’의 송기호 정책국장은 헌옷을 재활용해 만든 가방과 고릴라 인형을 내놨다. MoMA 측에선 작품 속에 담긴 절약과 환경보호의 정신을 높게 평가했다 한다. 실용적이면서 전통적 미를 중시해 온 김주씨는 색동 가방들을 선보였다. 이 밖에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잘 따는 한국인들의 습성을 활용한 숟가락 모양의 병따개 등 톡톡 튀는 제품도 많았다. 특히 십장생 그림의 우산과 지문 문양의 커프스링크 등은 큰 인기여서 진열 하루 만에 거의 동이 났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이젠 품질과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단계는 가고, 기업의 DNA 안에 문화를 넣어야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작은 병따개 디자인 하나를 보고 한 나라를 평가하는 인식이 변화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