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그놈의 헌법” 발언, 이렇게 본다
盧대통령 “그놈의 헌법” 발언, 이렇게 본다
신은진 기자 momof@chosun.com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입력 : 2007.07.17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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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梁建) 한양대 법대 교수는 16일 “이번 제헌절은 내년이 헌법 제정 60주년이고, 현행 헌법을 제정한 지 올해로 20년이 됐기 때문에 특히 뜻 깊은 날”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헌법이 하나의 문서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큰 존재가 됐다”며 “최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발언도 뒤집어 보면, 헌법의 힘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양 교수와의 일문일답.
―방금 언급한 대통령의 ‘그 놈의 헌법’이라는 발언이 헌법 비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모든 직업에 직업윤리가 있듯이 대통령도 직업윤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직업윤리의 첫째 항목은 헌법에 대한 존중이다. 대통령 취임선서의 첫 대목은 “나는 헌법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그 놈의 헌법 때문에’ 발언은 직업윤리 차원에서는 패륜(悖倫)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헌법은 1987년 6월 시민항쟁의 소산이고 6월 항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명예롭고 찬란한 사건이었다. 거기에는 숱한 젊은이들의 목숨까지 담겨있다. 그 가시적 소산이 지금 헌법이고, 이 헌법 아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런 헌법에 대해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고,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그 놈’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헌법에 대한, 그리고 국민 전체를 대하는 기본적 자세가 부지불식 간에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이 공무원의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대통령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선거역사와 헌정사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지 못하는 특수한 정치적 소견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선을 한참 넘은 것이다.”
―이런 발언이 국민 전반의 법 경시로 번질까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한 여론조사에서 헌법재판소가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기관으로 나왔다. 우리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나 신뢰도보다 헌법이나 헌법재판소가 받는 신뢰도가 더 높은 것 같다. 그런 격차를 고려하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이 성숙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그런 발언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아직 독립적인 사고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에게 영향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회 등 다른 헌법 기관들과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갖는 지위는 국민을 통합하는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회와 마찰되는 막말을 쏟아낸 것은 국민 통합자로서의 대통령의 지위를 완전히 일탈한 것이고, 하나의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정치투쟁가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법치주의가 많은 발전을 해왔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에 법치주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법 집행기관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이런 것이 문제였는데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급진적인 노동조합 세력과 같은 특정 집단에서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일반 국민의 법 준수, 상식적인 의미의 법 준수를 되살려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또 법치주의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연고주의를 끊는 모범을 보이는 사례들이 축적이 돼야 한다.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부터 연고주의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4년 중임제 등 끊임없이 개헌 논의가 흘러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4년 중임제 찬성론자인데, 20년 동안 현재 헌법 운용해오면서 드러난 문제점이라면 여소야대를 들 수 있다. 분할 정부라고도 하는 여소야대에서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잘 되지 못했다. 여소야대를 완화시키는 방안이 동시선거이고 동시선거를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4년 중임제를 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찬성론자인 나도 지난 1월에 대통령이 개헌론을 들고 나왔을 때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제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개헌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는 점에서 진지한 검토와 실현 가능성을 떨어뜨린 발언이다. 개헌 논의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곧 8·15 광복절로 사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사면제도는 군주시대의 유물이고, 사법권을 일순간에 무참하게 만드는 제도다. 독일 법철학자는 사면이 실정법의 불완전성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남용을 막기 위해 사면대상이 되는 범죄를 제한하고,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치자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사면을 통해 혜택을 받은 사람이 법을 고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잘 안 되고 있다.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
―헌재 자문위원을 하기도 했는데, 내년이면 스무 살이 되는 헌재에 한마디를 한다면?
“요즘 헌법재판이 정치운동의 연장 장소로 활용되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라는 표현도 나온다. 이는 정치 권력이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도 있고, 헌재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높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결과 사법이 정치화되는, 즉 헌재 자체가 정치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 재판관들이 자신들을 임명·추천한 사람과 연을 끊고 독립적으로 사고·판단·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제59회 제헌절에 특히 성찰해야 할 대목을 꼽는다면?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은 한마디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보장이다. 이 헌법 아래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형성해 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이 수준을 가져오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헌법이 국민통합의 기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면 한다.”양건 교수는 누구?
양건(梁建·60) 교수는 현역 헌법학 교수 중 헌법 분야의 최고 이론가 중 한 사람이다. 헌법과 법사회학 분야 전문가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텍사스 오스틴대 석사, 서울대 박사를 받았다. 85년부터 부교수로 한양대와 인연을 맺었고 한양대 법대학장, 한국교육법학회장, 한국공법학회장 등을 지냈다.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부위원장, 통일부 통일정책평가위원 등으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