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속으로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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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삼희·논설위원
몇 가지 묻고는 집 지은 현장으로 갔다. 미시령터널을 나와 속초 시내로 들어가기 전 어느 마을 외곽이었다. 안 교수 부인이 설계도 하고 인부도 직접 부려 지었다는 집이다. 1m쯤 쌓은 석축 위에 올린 작은 단층집인데 겉 벽엔 투박한 연갈색 석재를, 지붕은 스페인 양식의 황색 기와를 썼다. 어떻게 보면 황토집을 닮았고, 어떻게 보면 세련된 현대식 주택이었다. 뒤쪽은 얕은 산이고 둘레는 소나무밭, 마당엔 키 큰 감나무가 서 있었다.
내부는 대담하게 설계했다. 가로 5m, 세로 3m 정도의 유리창으로 덮은 거실 천장이 가장 눈에 띄었다. 눈이라도 와서 쌓인다면 눈 속에 사는 셈이 된다. 내벽은 흰색 페인트를 질감을 살려 칠했고 기둥, 대들보는 옹이 무늬가 살아 있는 소나무를 썼다. 방마다 큼지막한 유리창을 내서 눈 가는 곳마다 설악의 사계절이 보이게 돼 있었다. 집 전체가 환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졌다는 느낌이었다. 부부가 서로 어느 방에 있건 고개만 돌리면 말을 걸 수 있도록 공간도 통하게 만들었다. 원목 느낌을 살린 수납장 하며 방문을 울퉁불퉁한 두꺼운 유리로 만든 것까지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안 교수 부인 윤정자씨는 평생 5번 집을 지었다. 젊어서부터 집 짓기와 마당가꾸기에 관심이 많아 집에 건축, 원예잡지가 쌓였다고 한다. 유럽 등지에서 외국생활을 할 때도 TV 채널은 '하우징 & 가드닝' 프로에 고정됐다. 처음 집을 지어본 것은 1973년 서울 우이동에서다. 없는 돈에 집을 지으려다 보니 직접 나섰다. 빨간 벽돌집이었는데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1978년엔 연희동에 집을 지었다. 영종도에서 캔 차돌을 쪼아 겉벽에 붙였는데 지금은 아들이 산다. 그 뒤로 아파트 살던 부모님과 딸네한테도 각각 집을 지어줬다. 이젠 윤씨가 일을 한다면 모이는 전속 팀이 생길 정도다.
안 교수네는 2006년 12월 교수 생활을 은퇴하고 속초로 내려와 2년 가까이 33평 아파트에 살았다. 서울에 손색없는 아파트인데 값은 서울의 10분의 1이다. 10분만 가면 대포항 횟집들이어서 입맛 맞추는 것도 걱정이 없다. 척산온천에선 10만원을 내면 33번 쓰는 회수권을 준다. 그동안 설악산 구석구석 안 간 곳이 없다. 청초호 둘레 8㎞ 산책길을 도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안 교수가 속초에 파묻힌 까닭은 서울선 자기 생활을 가질 수 없어서다. 특강, 주례, 출판기념회 같은 부탁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다. 속초에 친구도 있고 제자들도 틈틈이 찾아와 외로움은 별로 안 탄다. 책 읽는 게 즐겁고 공부는 어차피 평생 과제다. 마감에 쫓기질 않아서인지 진척은 더디지만 생각은 숙성돼 나오더라는 것이다. "이젠 내 생활의 주인이 됐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부인의 집짓기 재능을 믿는다. 부부가 서울 을지로, 강남 학동 등지를 같이 다니며 자재를 골랐던 것도 소중한 기억이다. 손수 나서서 이것저것 챙기면 건축비도 아낄 수 있다. 평당 비용으로 따져보면 서울에서 짓는 괜찮은 주택의 절반 값으로 해결했다. 부인 윤씨는 전화통화에서 "아낙네가 지은 집을 뭘…"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본 느낌으론 전문가도 보고 배울 것이 꽤 있는 집이었다. 안 교수네는 어제(25일) 새집으로 이사했다.